때, 바다에 투신했던 육노인이 두 척의 해적선을 이끌고 동사군도로 돌아왔다.
휩싸여 죽기 직전 부상국의 해적선에 구함을 받았는데, 해적들은 그의 신기에
가까운 의술 솜씨에 반했고, 동사군도에 각종 진귀한 약재가 넘친다는 말에
넘어가 함께 쳐들어 오게 된 것이었다. 12월손없는날 오백 명이 넘는 해적들이
상륙하자 동사군도의 관리들은 저항을 포기하고 투항해 버렸다.
약초들을 캔 후에도 관리들을 노예로 삼았으며, 그곳에 있던 죄수들은 노예를
감독하는 일꾼으로 삼아 모두 해적선에 태워 돌아갔다. 신기에 가까운 의술로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며, 백삼호는 해적 두목의 열렬한 구애를 받기에 이르렀다.
덩달아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해적들 특유의 패도적인 도법까지 익히게 되었다.
창고업체 신체의 압제를 벗어나게 되었고, 부상국의 도법을 익혀 일류고수가 될
수 있었다. 생활이 안정되자 그는 중원행을 결심했다.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송석리 33650
모친도 비로소 그에게 출신 내력을 밝혀주었다. 육노인도 해적 두목의 허락을
받고 함께 올 수 있었다. 창고업체 발을 들여놓자마자 건친왕부 주위를 탐색하며
관운빈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34평아파트이사비용 뛰어들었던 백사호는 왕부의
고수들과 일전을 치르게 되었다. 사사영은 뜻밖에 관운빈과 이별하게 되자
처음에는 큰 슬픔에 잠겨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힘을 다해 무예를 연마하기
시작했다. 가르쳐 준 사부는 바로 검각의 각주인 고죽신니였다.
고죽신니는 해적선에서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사사영을 남해의 검각으로
데려갔는데, 거기에는 한 가지 사정이 있었다. 창고업체 넘도록 검각이 검후를
배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고죽신니는 사사영을 검각으로
데려오자마자 아낌없이 영약을 사용해 사사영의 병을 치료했을 뿐더러 그녀의
내공을 단번에 증진시켜 주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제자 사사영에게
고죽신니는 무림출도를 허락했다. 들어선 후 백방으로 관운빈을 찾았으나 별
소득이 없자 건친왕부 주위를 맴돌았다.